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드뤼사이 왕국 (문단 편집) === 배경 === 트라키아인들은 [[흑해]] 북쪽에서 [[다키아]]인과 함께 남하한 민족이다. 그들이 거주한 트라키아는 북부와 남부로 나뉘며, 하이모스 산맥 또는 북쪽으로 약간 더 떨어진 다뉴브 강이 자연적 경계를 형성했다. 트라키아 남부는 하이모스 강과 로도페스 강, 포로폰티스 강, 에게 해와 흑해 사이의 비옥한 평지를 형성했으며, 서쪽 경계는 스트라몬 강과 모라바 강 상류에 의해 형성되었다. 트라키아 북부는 다뉴브 강에서 카르파티아 강, 폰토스-카스피해 스텝의 서쪽 가장자리까지 미치는 영역으로 정의되었다. 그들은 이 광활한 영역의 내륙 지대에서 40개 이상의 부족을 형성했다. 반면 트라키아 해안 지대는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까지 타소스, 비잔티움, 오데소스 등 여러 도시 국가들이 그리스인들에 의해 설치되었다. 이 도시국가들과 인접한 부족들은 그리스인들과 때로는 전쟁을 벌이면서도 때로는 경제, 문화 교류를 활발히 했지만, 내륙에 더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부족들은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며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다. 그러던 기원전 516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가 그리스 원정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트라키아에 대군을 보냈다. 트라키아인들은 월등한 무장과 전투력을 갖춘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항복했다. 기원전 492년 마르도니오스가 다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여러 부족으로부터 공물을 받아냈다. 이후 트라키아는 페르시아 육군의 그리스 공략을 준비하기 위한 군사 기지로 활용되었고, 그리스 국경지대에 여러 요새가 설립되었다. [[사트라프]]가 트라키아를 다스렸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 시기에 페르시아에서 사용되던 동전이 트라키아에서 대량 유입된 사실이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졌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대군이 그리스로 쳐들어갔다. 원정군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끄는 적군을 사흘간의 격전 끝에 섬멸한 뒤 아테네를 파괴했지만, 뒤이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참패했다. 그 후 겨울이 다가오자. 크세르크세스 1세는 마르도니오스에게 상당한 병력을 맡기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마르도니오스는 이듬해인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페르시아군은 막심한 손실을 입고 본국으로 쫓겨났다. 이후 페르시아는 이오니아 일대를 포함한 에게 해 전체를 공격하고 뒤이어 이집트까지 노리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공세에 고전했고, 자연히 머나먼 트라키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페르시아군이 전면 철수하면서 힘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트라키아는 수년간 혼란에 휩싸였다. 이 시기 헤브로스 강 유역의 드넓은 계곡을 지배하고 있던 오드뤼사이 부족이 테레스 1세의 지휘하에 세력을 급격하게 확장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470년대에 중부 트라키아 일대를 지배하고 여러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이리하여 오드뤼사이 왕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